니체와 장자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긍정하고 자연스러운 자기 본성을 따르는 지혜를 만나라고 얘기합니다. 사회적 통념, 보편적 도덕, 절대적 진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자신을 인정하며, 반응하지 않는 힘(고독)을 길러 삶의 주인이 되라고 이야기하죠.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을 이기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사람이며, 허물을 벗고 모순을 포용하는 유연함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장자와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지금, 니체와 장자인가?
늘 최고선을 추구하고, 보편적인 도덕을 따르며, 자신을 완벽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우리의 진짜 삶은 숨 막혀왔습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건, 어쩌면 저 높은 이상향이 아니라, 발 디디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여기, 2000년이란 시간차가 있는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두 철학자, 장자와 니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위선적인 삶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자연스러운 자기 본성대로 사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장자의 말처럼, “내가 너에게 가르치는 것은 일순간에 지나지 않고 네가 나에게 배우는 것 역시 일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원한 진리는 없으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니체와장자 철학의 출발점입니다.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불안정함과 죽음의 가치
1.1. 덧없음을 인정하라: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붙잡으려 합니다. 안정적인 직장, 변치 않는 사랑, 영원한 명예. 하지만 장자와 니체는 “세상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붙잡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얘기하고 있죠.
우리의 몸도, 생각도, 심지어 우리의 이해관계마저도 시시때때로 바뀝니다. 어제 소중했던 것이 오늘은 시들해질 수 있고, 과거의 가치관이 현재의 나를 옥죌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나의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유동적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현실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모든 것을 일순간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불필요한 집착과 소모적인 싸움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얘기하고 있죠.
1.2. 죽음, 삶을 완성시키는 가장 위대한 스승
삶의 위대한 역설 중 하나는, 우리가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끝이 있기에 현재의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니체는 “모든 사람은 죽기 때문에 삶이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자의 시각에서 죽음은 삶의 완성이자,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현실의 사사로운 어려움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죠.
그만큼 우리를 괴롭히는 작은 문제들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무의미해지는지를 깨달을 때, 우리는 이 순간, 지금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게 되겠죠.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궁극의 촉매제로써 말입니다.
1.3. 노동의 신성함이라는 위선: 포장지를 걷어내다
요즘 시대는 노동의 신성함, 부지런함과 성실함이라는 구호 아래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세우고 있는 경향이 강합니다. 니체와 장자는 이러한 구호가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죠. 이 말은 게으름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성실 이라는 포장지 뒤에 숨겨진 위선을 꿰뚫어 보라는 뜻입니다.
장자는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야생의 말이 가장 건강하고, 묶어 놓지 않은 배가 바다 위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 사회적 통념에 억압당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자신의 성향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진정한 활력과 건강함의 원천이라고 얘기하죠.
나를 옥죄는 ‘해야만 한다’는 의무 중, 혹시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위선은 없는지 생각해볼 때이기도 합니다.
나를 지키는 힘, ‘무반응’과 ‘고독’의 기술
2.1. 섣부른 반응은 소모전일 뿐: 무관심의 방패
최근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와 비판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비판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반응하고 해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장자와 니체는 이것이 현명하지 않다고 경고합니다.
“무관심이 나를 지키는 수단이다.”
만약 반응한다면 그것은 감정적 소모전일 뿐으로, 타인의 말이나 비난에 즉각적으로 휘둘리는 것은 곧 타인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신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에 대한 비판이나 칭찬 모두 나의 본질을 규정할 수 없으며, 나의 이해관계조차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에 타인의 이야기 또한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죠.
2.2. 자제하는 힘, 서두르지 않는 고독의 비밀
결국 진짜 힘은 외부의 자극에 자제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옵니다. 서둘러 반응하지 않는 능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능력은 나만의 자세를 유지하고, 타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고독을 스스로 선택할 때 길러 질 수 있죠.
이러한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으로 물러나 새로운 힘을 비축해주는 시간입니다. 잘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 잘 나아갈 줄 알듯이, 내면의 직관이 새롭게 생겨날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에 무관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육체가 맞아야 단련되듯, 정신도 맞아야 단련이 됩니다. 여기서 ‘맞는다’는 것은 비판을 들었을 때, 상처받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장의 재료로 삼는 자세를 말합니다.
니체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매일 듣게 된다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파멸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나를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단련시키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외부의 칭찬이나 비난에 좌우되지 않고, 나 자신이 훈련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의 주인이 되도록 노력이 필요할 것 입니다.
진정한 소통과 관계 : 품을 줄 아는 부드러움
4.1. 불안정한 ‘나’를 인정할 때 시작되는 소통
진정한 소통은 완벽한 모습으로 포장했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불안정한 사람인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미숙하고, 불완전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나의 모든 경험과 가치관은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객관성은 곧 주관적임의 총합입니다. 내가 만난 사람, 경험, 책 모두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냅니다. 이 ‘나만의 세계’를 인정하고 타인의 ‘나만의 세계’를 존중할 때, 위선이 없는 서로 얽히지 않는 편안한 관계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4.2. 나와 다른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장자는 지혜와 지식은 다툼의 도구가 된다고 얘기하며, 보편적인 지식과 가치의 맹점을 꼬집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저마다 절대성을 지니고 있으며, 서로의 처지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비슷한 말은 ‘좋은 말’이고, 내 생각과 다른 말은 단지 ‘다른 말’일 뿐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것과 저것에 대한 정의는 내가 처한 상황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누가 맞고 틀린지를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하고 있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4.3.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다
가장 역설적인 진리 중 하나로,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품을 줄 아는 부드러움을 가진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부드러움과 포용력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하고 있죠.
고독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상대를 온전히 존중하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니체와 장자가 말하는 좋은 친구 관계란 서로에게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성장에 기여하고, 독립성을 해치지 않는 관계말입니다.
남을 섣불리 돕고 이롭게 하려는 행위 자체가 때로는 상대방의 자립심을 꺾고 괴롭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장자의 말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진 현대인에게 따끔한 충고일 수 있죠. 진정한 도움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완벽주의를 버리고 빈틈을 채우다
5.1. 부족함에서 오는 풍죽함
우리는 완벽함, 빈틈없음을 추구하지만, 니체와 장자는 “완벽주의보다 빈틈이 나의 삶을 더욱 풍족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 집에 창문이 있어야 빛이 들어오고,
- 수레 바큇살 사이가 비어 있어야 수레가 굴러가듯,
- 기능을 잘 하기 위해서는 비워두어야 합니다.
번역해주신 양승권님도 제주도의 돌담을 보아도 돌담 사이사이의 틈 때문에 태풍에도 넘어지지 않고 수천 년을 버텨왔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빈틈은 결함이 아니라, 삶의 유연성과 회복탄력성을 높여주는 공간으로 해석되는 것이겠죠.
5.2. 나를 규정하지 마라 – 객관성은 곧 주관적임
우리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려 하지만, 특정한 인물형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행위는 스스로를 가두는 일입니다. 당신의 모든 경험, 생각, 가치관은 당신만의 것이며, ‘나 말고는 아무도 내 관점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객관적 진리라는 것도 결국 수많은 주관적 관점의 총합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진짜 삶이며, 이 주관성을 긍정하는 것이 나를 해방시키는 첫걸음이겠죠.
5.3. 이기심이 아닌 존엄성: 고니와 까마귀의 본성
자신을 위하는 것이 곧 이기적인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장자는 반기를 들었었죠.
“고니는 씻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검은칠을 안 해도 검다.”
자기만을 위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성품이 아니라,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나’라는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본성이겠죠.
남을 위해 해온 행위들도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위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Part 5. 절대 가치에 대한 의심
6.1.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의 진짜 의미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은 단순히 종교의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인류가 오랫동안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왔던 보편적인 이상, 규범, 원칙들이 그 힘을 잃고 무너졌다는 선언이였던 거죠. 니체는 이러한 절대 가치를 만드는 행위조차 세상에 대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며, 때로는 ‘의지와 힘이 부족하다는 징후’일 수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어떤 외부의 절대적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창조해야 하는 주도적인 인간이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6.2. 지혜와 지식은 다툼의 도구가 된다
보편적 지식이나 가치가 우리 삶을 괴롭히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장자는 지적했죠. 서로의 처지가 제각각 다르고, 상황과 때에 따라 좋고 나쁨이 다르게 규정되는데, 이것을 선과 악라는 절대적인 잣대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 다투게 된다고 말입니다.
현재 우리를 옥죄는 위선적인 지식이나 도덕은 우리의 삶의 의지를 약화시킬 때가 많습니다. 인습화된 도덕적 가치 규범에서 벗어나 자연을 따라야만 한다고 장자는 역설했죠. 자연의 역동적인 진행 과정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고, 그저 자연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라고 말이죠.
6.3. 고전은 옛사람들의 ‘찌꺼기’
“고전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다.” 장자의 이 파격적인 말은 고전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장자는 ‘옛사람들의 흔적을 애써 구하지 말라’고 조언을 한 것이죠.
무턱대고 전통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자기 주인을 잃고 절망하는 나이든 하인’으로 얘기하고 있으며, 공자의 권위에 기대어 사복을 채우고 공자의 정신을 본받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가짜 도학자들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려오는 전통과 사상을 단지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옛사람이 추구했던 정신을 찾아내어 자신의 삶에 적용해야 그 진짜 의미가 부각이 된다는 뜻인것 같습니다. 재능은 이미 ‘니 안에’ 있으니, 외부의 권위에 기대지 말고 내면의 힘을 기르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니체와 장자는 모두 ‘보편적 이념’을 의심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죠. 그만큼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라는 의미인 것이죠.
자연으로 돌아가 ‘가장 강한 나’를 만나다
7.1. 허물을 벗는 뱀, 우물 밖의 개구리
니체는 “허물을 벗을 수 없는 뱀은 파멸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과거의 생각, 가치관, 도덕적 껍질에 갇혀 있다면 결국 파멸할 수밖에 없음을 빗대어 얘기하고 있습니다.
장자가 말한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우리는 자신이 사는 곳, 자신이 구속된 비속한 교리 때문에 더 넓은 세상의 도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고 같은 느낌으로 얘기했죠.
‘가장 강한 인간’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겨내며, 세속을 넘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인간이며, 우리는 끊임없이 허물을 벗고 스스로를 훈련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7.2. 모순을 포용하는 인간
논리학은 모순을 인정하지 않지만, 현실과 자연 세계에서는 명쾌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일이 허다합니다. 니체는 가장 현명한 인간은 모순이 가장 풍부한 자로, 이 모순들을 조화시켜 장엄한 화음을 이루는 위대한 순간을 경험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위험은 곧 기회란 말도 논리적 모순이며, 선과 악, 이것과 저것처럼 한가지 가치만 존중하는 것은 하늘을 존중하면서 땅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말이죠.
위선적 도덕에 얽매이지 말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 그것을 필요에 따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노자와 장자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행동과 생각을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깊고 넓은 ‘물’로 표현했습니다. 니체가 말한 이드와도 통하는 개념이며,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편견에 사로잡힌 세속적 자아를 걷어내고 이 무의식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했죠.
니체는 절대적 진리를 끝까지 추구하다 보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노력이 부질없다고 판명되는 순간 허무주의는 시작되며 결국, 우리는 자연의 대도에서 거칠 것 없이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그려나가는 자기 주도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담, 삶의 주인인 나를 그대로 사랑하라
니체와 장자가 말하는 교육은 외부의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훈련되는 과정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자신의 영혼을 지배하고 명령하는 삶의 주인이 되어가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장자가 제자를 대하는 방식처럼,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잠재된 재능을 본인의 역량에 의해 끌어내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겠죠.
결국, 이 모든 가르침은 한 가지 메시지로 수렴됩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나’라는 생명체를 사랑해야 한다.”
녹슨 도덕, 억압적인 통념, 절대적 가치라는 이름의 허울 때문에 나를 가두지말고, 끊임없이 변하는 자신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내면의 힘을 기르는 노력을 해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모순을 포용하고, 빈틈을 인정하며, 좋고 나쁨을 느끼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게 더욱 자연스럽게 느껴지네요.
진짜 뛰어난 사람은 자신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굳이 남에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제 당신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가장 강하고 자유로운 ‘진짜 나’의 삶을 이제 시작해보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시작할 때입니다.
나를 옥죄는 위선적인 허물은 뭔지 생각해보면서 오늘 당장 내 삶에서 비워내야 할 빈틈을 찾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내 삶은 새롭게 시작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