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토큰은 어떻게 흐를 것인가?
우리는 흔히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이야기할 때 탈중앙화를 외칩니다.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돈, 국경 없는 화폐를 꿈꾸며 코인에 투자하죠.
코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기 위해 잠시 돈을 보관해두는 곳, 바로 테더(USDT)나 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이 있으며, 이 코인들은 바로 미국 달러(USD)로 연동되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탈중앙화를 외치는 코인 시장의 기축 통화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더 강력하게 미국 달러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인거죠. 전 세계 크립토 거래의 90% 이상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상황을 가장 불편하게 바라보는 곳은 어디인지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바로 유럽(EU)과 중국 같은 미국의 경쟁국들입니다. 그들에게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신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화폐 주권을 위협하는 디지털 트로이 목마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디지털 화폐 전쟁의 흐름 속에서 최근 시행된 유럽의 MiCA(미카) 규제가 왜 단순한 법안이 아닌지, 이것이 달러 패권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관심있게 보고 있어야 정확하게 맥을 집을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을 죽이려다 슈퍼 달러를 만들다
처음에 미국 정부와 연준(Fed)은 암호화폐를 무시하거나 싫어했죠. 자금 세탁의 온상이고, 달러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묘한 현상이 발견됩니다.

1. 미국 국채의 새로운 큰손, 스테이블코인
테더(Tether)나 서클(Circle)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고객에게 1달러를 받으면 1코인을 줍니다. 그리고 받은 1달러를 금고에 그냥 넣어두지 않습니다. 안전하고 이자를 주는 자산, 즉 미국 국채를 삽니다.
현재 테더사가 보유한 미국 국채의 양은 웬만한 국가(예: 독일, 호주)가 보유한 양보다 많습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줄 알았던 코인 시장이, 알고 보니 자신의 빚(국채)을 가장 열심히 사주는 효자였던 겁니다.
2. 전 세계의 달러화(Dollarization) 가속
아르헨티나, 튀르키예, 나이지리아처럼 자국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나라의 국민들은 이제 은행에 가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으로 USDT를 사죠. 과거에는 물리적인 달러 지폐를 구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누구나 주머니 속에 디지털 달러를 넣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이 된것이죠.
결과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물리적 한계를 넘어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달러 패권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잠자던 사자를 깨운 페이스북 : 리브라의 충격
이 흐름에서 각국 정부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칼을 빼 든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2019년, 페이스북(현 메타)이 발표한 ‘리브라(Libra, 나중에 Diem으로 변경)’ 프로젝트입니다.
당시 페이스북의 사용자는 25억 명이 넘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는 “전 세계 어디서나 수수료 없이 돈을 보내게 하겠다”며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죠.
이때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은 등골이 서늘했을 겁니다.
만약 25억 명이 자기 나라 돈 대신 페이스북 코일을 쓴다면, 우리 통화 정책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국가 권력이 기업으로 넘어가는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미국 의회와 유럽 당국의 무시무시한 압박으로 리브라 프로젝트는 공중분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각국 정부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빅테크가 금융을 집어삼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룰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유럽연합이 세계 최초의 가상자산 포괄 규제법안인 MiCA(Markets in Crypto-Assets)를 서둘러 만든 진짜 이유입니다.
유럽의 반격, MiCA(미카) 규제의 진짜 속내
2024년 6월 말부터 유럽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MiCA 규제가 시행되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투자자 보호와 테라-루나 사태 방지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로화를 수호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깔려 있습니다.
MiCA가 스테이블코인을 조이는 방법
MiCA는 스테이블코인을 자산준거토큰(ART)과 전자머니토큰(EMT)으로 나누고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 EU 내에 법인을 설립할 것.
- 준비금의 일정 비율을 반드시 EU 은행에 예치할 것.
- 비 유로화 스테이블코인(예: USDT, USDC)의 하루 결제 건수를 제한할 수 있음.
이게 무슨 뜻이냐면, 쉽게 말해 “유럽에서 장사하고 싶으면, 미국 달러(USD) 기반 코인 말고 유로(EUR) 기반 코인을 쓰게 만들라”는 압박입니다.
지금까지 코인 시장은 99%가 달러였습니다. 유럽 투자자조차 유로를 달러로 바꿔서 코인을 샀죠. 유럽중앙은행(ECB)은 이 디지털 환전 과정에서 유로화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겁니다. MiCA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디지털 금융 시장에서 유로화의 영토를 확보하려는 유럽의 알박기 전략이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유럽이 MiCA로 방어막을 치는 동안, G2(미국과 중국)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 미국 : “통제 가능한 민간 달러를 키운다”
미국은 ‘규제된 스테이블코인’ 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테더(USDT)처럼 역외에 있어 통제가 어려운 녀석들은 쳐내고, 서클(USDC)이나 페이팔(PYUSD)처럼 미국 제도권 안에서 말을 잘 듣는 기업들을 키워주려 합니다.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는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으로 미국 내 반대가 심하죠. 따라서 미국은 “민간 기업이 달러 코인을 뿌리게 두고, 정부는 그 기업을 감시한다”는 전략으로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 합니다.
- 중국 : “민간은 필요 없다, 국가가 곧 법이다”
중국은 정반대입니다. 모든 암호화폐를 금지했고, 오직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위안화(e-CNY)만을 밀고 있습니다.
중국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달러 결제망(SWIFT)에서 벗어나는 것. 일대일로 국가들과 브릭스(BRICS) 국가들에게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게 하여, 미국이 감시할 수 없는 독자적인 금융 블록을 만들려 합니다. 여기서 스테이블코인은 중국 공산당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불순분자일 뿐이죠.
화폐의 파편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인터넷은 하나였지만, 이제는 돈이 쪼개지고 있다.”
과거에는 인터넷만 연결되면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디지털 금융 시장은 블록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 유럽에서는 규제를 준수한 유로 코인(EURCV 등)이 쓰이고,
- 미국 중심 진영에서는 규제된 달러 코인(USDC)이 쓰이고,
- 중화권 및 제3세계에서는 그들만의 CBDC나 검열 저항성 코인이 쓰이는 세상.
이런 화폐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면, 단순히 “어떤 코인이 올라요?”라는 질문 밖에 할 수 없게 되죠.
투자자들이 해야 할 일은?
- 규제 준수 코인에 주목하세요 : MiCA 승인을 받은 스테이블코인(예: 서클의 EURC)이나 미국 규제안에 부합하는 프로젝트들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 RWA 트렌드 : 국채를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이 뜬다는 건, 결국 블록체인 위로 전통 금융 자산이 올라온다는 뜻입니다. 국채, 부동산 등이 토큰화되는 흐름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웹 3.0 시대, 돈은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 돈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고, 국적(규제)이 새겨지고 있죠. 스테이블코인의 지정학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다가올 금융 전쟁에서 내 자산을 지키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