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에드워드 헬릿 카, E.H.카)

What is history? 에드워드 헬릿 카는 런던 출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1916년 외무부에 입사하여 1936년에 그만 두고 웨일즈 칼리지의 국제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이후 옥스퍼트 밸리올 칼리지의 명예 연구원으로 1966년에 임명되었다. 카의 기념비적인 작품은 소련사인데 가디언은 금세기에 한 영국인 역사가에 의해서 쓰인 가장 중요한 저작들 중 하나라고 평가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른 1945년부터 소련사를 쓰기 시작하여 30년간 그일에 매달렸다. 이후 E.H 카는 1982년에 사망함으로써 그의 수많은 작품활동이 끝났지만 여전히 후대에 많은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인물 그리고 고서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의 탄생은(역사란 무엇인가?) 책의 서문은 카의 노트에서 작성이 되었고 R.W. 데이비드가 마무리 함으로써 1984년에 이 책이 완성되었다.

“역사란 역사 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 에드워드 핼릿 카(E.H. Carr)

학창 시절 우리가 배운 역사는 지독하리만큼 따분한 암기 과목이었다. 몇 년도에 어떤 왕이 즉위했고, 어느 나라와 전쟁을 벌여 누가 이겼는지를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이 전부였다. 시험 문제를 맞히기 위해 사건의 나열을 머릿속에 구겨 넣다 보면, 역사는 그저 먼지 쌓인 박물관 유리창 너머의 유물처럼 박제되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E.H. 카(Edward Hallett Carr)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를 통해 이러한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받아친다.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진행된 연속 강연을 바탕으로 엮은 이 책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인문학의 최고 고전으로 꼽힌다. 카는 역사를 단순히 ‘과거의 기록’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의 인간’이 끊임없이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역동적인 생명체와 같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19세기 실증주의 역사학의 거장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는 역사가의 임무를 “오직 그것이 원래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역사가는 자신의 주관이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차갑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나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카는 이러한 랑케식 실증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이를 “사실의 맹신이라는 터무니없는 오류”라고 부르며, 역사적 사실은 결코 진공 상태에서 순수하게 존재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 과거의 사건과 역사적 사실의 차이: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도 수백만 명의 사람이 강을 건너지만, 역사학은 오직 기원전 49년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넌 사건만을 역사적 사실로 선택한다.
  • 역사가의 선택이라는 필터: 과거의 무수한 사건 중에서 어떤 것을 역사적 사실로 격상시킬 것인가는 전적으로 역사가의 문제의식과 해석에 달려 있다. 역사가가 가치를 부여하고 무대 위로 불러내기 전까지, 과거의 사건은 그저 흩어져 있는 원석에 불과하다.

카는 이를 요리에 비유했다. 사실이란 생선가게 진열대 위에 놓인 생선과 같다. 역사가는 그것을 사 와서 가시를 발라내고 토막 친 뒤, 자신이 원하는 양념을 곁들여 식탁에 내놓는 요리사와 같다. 우리가 먹는 것은 날생선이 아니라 ‘역사가가 요리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역사가 소설은 아니다”

실증주의를 비판했다고 해서 카가 “역사는 완전히 주관적인 것이며, 제멋대로 지어내도 된다”는 식의 극단적 상대주의나 회의주의를 옹호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예컨대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고 말한 크로체나, 역사를 역사가의 내면적 재사유로 본 콜링우드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이 빠지기 쉬운 ‘역사의 주관화’라는 함정을 경계했다.

카가 내린 결론은 ‘상호작용’이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력이 없고 근거도 없으며, 사실이 없는 역사가는 뿌리가 없어 공허할 뿐이다.

구분실증주의 (랑케)회의주의 (콜링우드)E.H. 카 (Carr)
핵심 가치객관적 사실의 절대성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사실과 해석의 상호작용
역사가의 역할단순한 사실 기록자과거를 재창조하는 문학가과거의 사실과 대화하는 주체
역사의 본질사실은 스스로 말한다역사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결국 역사는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이 아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의 우리와 과거의 사건 사이의 중단 없는 대화라는 불후의 명제는 여기서 탄생했다.

흔히 역사를 천재적인 뇌를 가진 역사학자나 영웅들의 독무대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카는 역사가 또한 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그 시대가 낳은 아들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 역사가가 쓴 책을 읽기 전에, 그 역사가를 만들어낸 사회적 환경과 시대적 맥락을 먼저 연구해야 한다.
  • 역사가가 사용하는 언어, 사고방식, 가치관은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 계급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 예를 들어, 같은 로마 제국의 몰락을 보더라도 18세기의 에드워드 기번이 바라본 시선과 20세기의 학자가 바라본 시선은 전혀 다르다. 각자가 처한 시대적 과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나 칭기즈칸 같은 초인들이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것일까? 카는 개인의 천재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위대해질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그들이 수많은 대중의 열망과 거대한 사회적 흐름의 정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역사적 위인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기존 세력을 대표하거나, 혹은 그 세력을 파괴하고 새로운 세력을 창출하려는 거대한 힘을 대변하는 개인이다.”

역사는 ‘개인 대 사회’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집단적인 행동과 그 상호작용이 남긴 결과물이다. 따라서 진정한 역사 연구는 영웅 한 사람의 심리 분석을 넘어, 그 개인이 움직일 수 있었던 사회적 조류와 민중의 움직임을 포착해내는 일이다.






역사가 과학이 될 수 없다는 5가지 반론에 대한 카의 답변

  1. 역사는 특수한 사건만 다루고, 과학은 일반적인 법칙을 다룬다?
    • 카의 반박: 역사 가 역시 끊임없이 ‘일반화’를 시도한다. ‘고대 로마의 패망’과 ‘영국 제국의 쇠퇴’를 비교하며 국가의 몰락에 대한 일반적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현재를 진단한다. 역사 가가 ‘혁명’이나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일반화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2. 역사는 인간에게 아무런 교훈도 주지 못한다?
    • 카의 반박: 역사는 학습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과거의 경제 대공황을 학습했기에 현대 정부들은 금융 위기가 오면 선제적으로 자금을 투입한다. 과거의 실책을 통해 현재의 제도를 정비하는 것 자체가 역사의 가장 강력한 교훈적 기능이다.
  3. 역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 카의 반박: 자연과학조차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일기예보가 틀리기도 하고, 현대 물리학도 확률로 이야기한다. 역사는 ‘몇 년 몇 월 며칠에 혁명이 터진다’는 식의 구체적 사건은 맞추지 못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한다’는 식의 경향성은 충분히 예측한다.
  4. 역사는 인간이 인간을 관찰하므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 카의 반박: 현대 물리학 역시 관찰자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자신이 주관을 가진 존재임을 인지하고, 그것이 미칠 영향을 끊임없이 통제하며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바로 과학적 태도다.
  5. 역사에는 도덕과 종교의 문제가 개입된다?
    • 카의 반박: 역사가는 개별 역사적 인물의 사생활을 두고 도덕적 재판관 노릇(예: ‘헨리 8세는 나쁜 남편이었다’)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역사 가의 임무는 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찬양이 아니라, 그 인물이 이끈 체제와 사회적 행위가 인류 역사에 어떤 결과(예: 종교개혁과 절대왕정의 성립)를 초래했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역사의 인과관계

역사학의 핵심은 늘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카는 역사가가 과거를 연구할 때 원인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어떤 역사적 사건도 단 하나의 원인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의 원인을 묻는다면, 재정 파탄, 구체제의 모순, 계몽사상의 확산, 기후 변화로 인한 흉작 등 수십 가지 원인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진정한 역사가는 이 무수한 원인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들을 철저하게 체계화하고 서열화한다. 어떤 원인이 사회적 변화를 이끈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원인인지, 어떤 원인이 불을 붙인 부차적인 도화선에 불과했는지를 가려내는 것이 바로 역사가의 통찰력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지구의 표면은 바뀌었을 것이다.” — 블레즈 파스칼

역사가 우연에 의해 좌우된다는 이른바 ‘역사적 우연론’에 대해 카는 통쾌한 반박을 날린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에 홀려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한 것이 로마 제국 성립의 결정적 원인일까? 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원인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카는 역사 가가 마땅히 ‘합리적이고 역사적인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연적 원인은 역사의 진행 속도를 조금 빨라지게 하거나 늦출 수는 있지만, 도도하게 흐르는 거대한 역사적 조류의 방향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우연에만 집착하는 역사는 결국 인과관계를 포기하는 회의주의적 낙서에 불과하다.

역사란 무엇인가? 의 후반부를 관통하는 가장 묵직한 키워드는 바로 진보다. 카가 이 책을 집필하던 20세기 중반은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과 냉전, 핵무기의 공포 등으로 인해 인류의 낙관주의가 완전히 박살 난 시기였다. 수많은 지식인이 인류의 미래를 비관하고 종말론을 이야기할 때, 카는 당당하게 “역사는 진보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카는 역사의 진보를 생물학적인 진화와 엄격하게 선을 긋는다.

  • 진화: 유전적 특성이 세대를 거쳐 신체적으로 축적되는 생물학적 과정이다.
  • 진보: 인간이 이룩한 가치 있는 자산(기술, 경험, 제도, 사상, 가치관)이 세대에서 세대로 문화적 전승을 통해 축적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역사의 진보는 멈춤 없이 우상향하는 직선적 상승 곡선이 아니다. 때로는 참혹하게 퇴보하기도 하고, 지루하게 정체되기도 한다. 역사의 중심지가 유럽에서 아시아로, 혹은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인류의 궤적을 거시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인간이 자연 환경을 극복하고 사회를 조직하며 자유를 확대해 온 역량은 분명히 확장되어 왔다.

여기서 카는 역사학적 ‘객관성’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객관성이란 과거의 사실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시선에서 온다는 주장이다.

가장 객관적인 역사 가란 단순히 눈앞의 사료를 그대로 베껴 적는 사람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 속에서 미래의 발전 방향을 통찰해내는 역사가가 가장 객관적인 역사가다. 미래에 대한 올바른 전망과 가치 지향을 가진 자만이, 과거의 무수한 사실 중 진짜 의미 있는 핵심을 짚어낼 수 있다는 역설적인 결론이다.






AI 세상에서의 E.H. 카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단순히 1960년대의 낡은 역사학 방법론에 머무는 책이 아니다. 이 고전이 던지는 메시지는 AI 시대로 진입한 우리들에게 더욱 아날로그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고 있다.

우리는 매일 데이터의 바다에 침수당한 채 살아간다. 인터넷과 SNS에는 1초에도 수백만 건의 정보와 사실이 쏟아진다. 실증주의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정보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세상의 진실에 더 가까워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확증 편향을 유도하는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사실만을 골라 보여주는 필터 버블을 만든다. 넘쳐나는 데이터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카의 경고를 뼈에 새겨야 한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쏟아지는 맥락 없는 정보들 사이에서 어떤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어떻게 가치 있게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주체적 이성과 비판적 시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대중은 모두 각자 삶의 ‘역사가’가 되어야만 한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다. AI는 방대한 과거의 텍스트 데이터를 조합하여 그럴듯한 역사적 서사를 몇 초 만에 뚝딱 써내려간다. 그렇다면 AI가 인간 역사 가를 완벽히 대체하는 날이 올까?

카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오”다. AI는 과거의 기록을 정교하게 수집하고 매칭할 수는 있지만, 래를 향한 가치 지향적 신념이나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없다. 카가 말한 역사의 객관성이 ‘미래를 향한 통찰과 진보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역사를 서술하고 해석하는 주체는 언제나 현재의 모순을 깨부수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려는 ‘인간’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과거’라는 이름의 개인적 사건들이 존재한다. 뼈아픈 실패의 기억, 찬란했던 성공의 순간, 지워버리고 싶은 후회스러운 선택들까지. 이 과거의 조각들을 어떤 눈으로 해석하고, 현재의 나와 어떻게 대화 나누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진보)가 결정된다. 과거에 발목 잡혀 절망하지도 않고, 과거를 있는 그대로 왜곡하지도 않으면서, 더 나은 삶을 향해 끊임없이 ‘현재와 과거의 대화’를 주도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카가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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