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은 인문학적인 느낌이였지만 책을 열어보면 물리학 책으로 보이고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인문학적 생각을 하게 하는 묘한 책이다. 고등과학원 박권 교수의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딱딱한 이론물리학의 언어로 쓰여 있지만, 그 끝에는 결국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가장 뜨거운 인문학적 질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내 머릿속을 맴도는 양자역학의 세계관과, 그 속에서 내가 발견한 삶의 태도를 정리해 보았다.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질문은 “존재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였다. 책에 따르면 모든 존재의 답은 결국 ‘양자’에 있다. 우리 몸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물질이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는 것, 우주의 입자들이 질량을 얻어 물질이 되는 과정 모두가 미시 세계의 파동과 확률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물리적 기적의 결과물이다. 즉, 우리는 철저하게 양자역학적인 법칙에 의해 빚어진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 시선을 생명의 영역으로 가져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과학의 냉정한 눈으로 볼 때,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근본적으로 ‘DNA라는 디지털 정보를 다음 세대에 남기고 보존하도록 고안된 기계적 메커니즘’을 탑재한 생존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화의 목적이나 우주적 사명 같은 환상을 걷어내고 나면, 인간은 그저 유전자를 가장 효율적으로 복제하기 위해 세팅된 정교한 정보 처리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저 DNA를 전달하는 기계이자 물리 법칙의 매개체인가? 이 지점에서, 내가 이 책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양자역학이 말하는 ‘우연과 확률’의 우주가, 동양철학인 장자의 사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은 세상 모든 것이 확률로 존재하며, 우리는 내일을 완벽히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내 맘대로 통제할 수 없는 이 확률의 우주는, 억지로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 말고 자연의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기라는 장자의 무위 사상과 꼭 닮아 있다. 무수한 확률의 요동 속에서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물리학적 명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운명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이라는 장자의 안명의 태도로 내게 다가왔다.
우리가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자의 굴레를 쓴 기계일지 몰라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확률의 파도 위에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자유가 있다.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을 억지로 통제하려는 집착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나는 장자가 말한 소요유,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말이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이 문장은 절대적 자유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일어날 일들이 우연과 확률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불안해하거나 애쓰지 말고 그저 내게 주어진 이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무엇가를 유희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