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사제인 이 책의 작가는 북경 대학교에서 불교철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 카톨릭 사제인 저자는 장자의 어떤 면에 취해서 장자를 관심있어 했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면 책을 읽고 이 부분이였음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장자는 세상을 볼때 우리가 흔히 하는 버릇처럼 구분하고 나누고 서열을 매기지 않는다. 무언가의 크고 작음, 높고 낮음, 넓고 좁음, 길고 짧음 같은 차이를 집착하여 따지지 않았다고 한다.
나 또한 최근 장자의 생각에 관심이 많다. 대표적인 이야기는 곤과 붕이다. 그 이야기는 북쪽 바다 끝에 곤이라는 물고기가 살았다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물고기의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했고 이 물고기가 변화하여 새가 되었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고 했다. 붕의 등은 태산과 같고, 날개는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새가 한 번 날개를 떨쳐 비상하면 바닷물이 3천 리까지 출렁이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 상공까지 올라가며, 붕은 그렇게 6개월을 날아 남쪽 바다 끝인 남명, 즉 천지를 향해 나아간다. 이때 매미나 작은 새들은 비웃으며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숲풀 사이만 날아도 충분한데, 대체 저 큰 새는 저렇게 느리고 어디로 저렇게 멀리 가는가?”
작은 앎’과 ‘큰 앎’의 의미
숲속의 매미가 붕새의 행보를 비웃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 안에서는 수풀 사이의 비행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기술적 진보를 맹목적으로 추앙하거나 거부하는 양극단의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장자는 매미를 꾸짖기보다 작은 앎이 큰 앎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서로 다른 차원의 존재를 수용할 것을 권한다.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을 다루는 붕새의 감각을 익히는 동시에, 일상의 소소한 가치를 즐기는 매미의 삶 또한 존중하는 조화로운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붕새가 날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터운 바람이 밑을 받쳐줘야 한다. 아무리 거대한 날개를 가졌어도 바람이 없으면 비상은 불가능하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고도로 발달한 AI 인프라라는 바람을 타고 지식의 바다를 유영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하지만 장자는 거대한 비상조차 결국 바람이라는 외부 조건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진정한 자유는 기술이나 환경에 종속되지 않는 내면의 중심에서 비롯된다고 알리고 있다. 기술이 삶을 풍요롭게 할 수는 있으나 행복의 절대적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9만 리 상공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티끌과 먼지가 뒤섞인 푸른 평온일 뿐임을 장자는 얘기하고 있다. 우리 역시 기술의 홍수 속에서 사소한 정보에 집착하기보다, 본질을 꿰뚫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3000년전의 장자가 9만 리 상공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티끌과 먼지가 뒤섞인 푸른 평온이란 의미의 말을 해서 흥미롭고, 이후 약 3000년 후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에서 말한 것과 100% 똑같음을 느낀다. 우주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지구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존재이다. 칼 세이건은 이 점을 통해 우리가 서로에게 더 친절해야 하며,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이 점을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역설한다. 이는 인위적인 욕심을 버리고 우주의 흐름에 순응하라는 도가의 ‘무위’와 결을 같이 한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지구에서부터 명왕성 궤도보다 훨씬 멀리 나아가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나기 직전,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보이저 1호의 카메라 렌즈를 지구 방향으로 돌려 태양계 행성들을 찍는 ‘가족사진’ 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 지구 사진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장자의 느린 생각
- 무위: 인위적 개입의 중단
- 자연: 본연의 질서대로 작동
- 비움: 새로운 가능성의 확보
- 흐름: 유연한 변화와 적응
도가의 대표 백가 제자인 장자는 자연의 자유로움, 세상의 자유로움을 상징한다고 느끼고 있다. 여기에서 제자백가란 여러 스승과 백 가지의 학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인 춘추전국시대(BC 5세기~BC 3세기)에 등장한 수많은 철학자와 그 사상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당시의 사회적 혼란을 해결하고 ‘어떻게 하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천재가 등장했던 지적 황금기를 상징한다.
- 제(諸): ‘모든’, ‘여러’라는 뜻
- 자(子): 공자, 노자, 맹자처럼 높은 덕과 학문을 갖춘 스승을 높여 부르는 말
- 백(百): 숫자 100이 아니라, 매우 많다는 비유적 표현
- 가(家):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학파’나 ‘집안’을 의미합니다.
당시 수백 개의 학파가 있었지만,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핵심 학파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됩니다.
| 학파 | 핵심 인물 | 핵심 사상 | 특징 |
| 유가 | 공자, 맹자, 순자 | 인과 예 | 도덕과 윤리를 통해 사회 질서를 바로잡으려 함. |
| 도가 | 노자, 장자 | 무위자연 |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 것을 강조함. |
| 법가 | 한비자, 이사 | 법치 | 엄격한 법과 보상/처벌을 통해 강력한 국가를 만들려 함. |
| 묵가 | 묵자 | 겸애 | 신분 차별 없는 보편적 사랑과 평화, 실용성을 중시함. |
춘추전국시대는 끝없는 전쟁이 이어지던 시기였으며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자 각 나라의 왕들은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유능한 인재를 찾았고, 이에 따라 지식인들이 자신의 사상을 펼칠 기회가 많았던 시기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공자에 척을 졌다 사람이 바로 장자다. 공부와 지식으로만 만들어진 인과 의라는 올바름의 허울 말이다. 인간 세상에서 지식이 다툼을 만들 듯 인과 의라는 올바른 허울로 누군가를 가르치려 한다면, 각자 삶의 위치가 다른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으로 나뉘어져 결국 인과 의라는 기준으로 각자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국 나쁜 사람이 되버리는 현상이 위태롭다고 장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 순서 | 인물 | 활동 시기 (BC) | 학파 | 핵심 철학 및 특징 |
| 1 | 노자 | 6세기 초 | 도가 | 무위자연: “억지로 하지 마라.”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것이 최고의 통치이자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 |
| 2 | 공자 | 551 ~ 479 | 유가 | 인과 예: “사람다움을 회복하자.” 도덕적 수양을 통해 질서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함. |
| 3 | 묵자 | 470 ~ 391 | 묵가 | 겸애: “차별 없이 사랑하라.” 유가의 차별적 사랑(가족 우선)을 비판하며 평화와 실용을 강조. |
| 4 | 맹자 | 372 ~ 289 | 유가 | 성선설: “인간은 본래 선하다.” 왕이 덕으로 다스리는 ‘왕도정치’를 역설하며 공자의 사상을 계승. |
| 5 | 장자 | 369 ~ 286 | 도가 | 물아일체: “세속의 틀을 깨라.”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개인의 절대적인 정신적 자유를 추구. |
| 6 | 순자 | 312 ~ 230 | 유가 | 성악설: “인간은 본래 악하다.” 교육과 규범(예)을 통해 인간을 개조해야 한다고 믿은 현실주의 유학자. |
| 7 | 한비자 | 280 ~ 233 | 법가 | 법치: “법대로 해라.”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엄격한 법령과 시스템에 의한 통치를 주장. |
장자뿐 아니라 제자백가들이 배출되던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이 칼과 창의 전쟁이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데이터와 평판, 그리고 끊임없는 비교라는 이름의 소리 없는 자본주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AI라는 바람을 타되, 그 바람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가진 현대판 붕새가 되어야 한다.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벌어지는 찰나의 소동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나라는 존재의 자연을 신뢰하며 유유히 세상을 노니는 장자의 생각을 이따금씩은 느끼는 여유도 필요할 것 같다. 기술이 주는 풍요를 누리면서도 마음의 비움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보하는 것, 그것이 장자와 칼 세이건이 시대를 초월해 치열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메세지일 수 있다.